두 강도와 함께 우리 주님은 갈보리 산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셨다. 가시관 눌러 쓰신 머리와 이마에선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깊숙이 창에 찔린 옆구리와 굵은 쇠못 박힌 두 손과 두 발에선 마지막 한 방울의 피와 물까지 아낌없이 쏟아내고 계신다. 그 아픔, 그 고통, 그 쓰라림을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으랴. 온 인류를 다 싸안으신 사랑과 용서와 긍휼의 손을 활짝 펴시고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채 고통을 참으시며 아래를 내려다보신다.
자기를 못 박은 로마 병정들이 제비뽑아 옷을 나누고 “성전을 헐면 사흘에 짖겠다던 자여, 하나님의 아들 이어든 거시서 내려와 보라” “남은 구원 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느냐” 고 비웃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 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고 조롱하던 무리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치며 갈대로 치며 침 뱉던 자들 ...
간사하고 포악한 죄 범한 인간들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웅성거리고 있다. 못 박히고 창에 찔린 아픔보다 몇 배나 큰 고통이 주님의 가슴을 흐른다.
그러한 무리들을 내려다보시며 주님은 저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향하여 첫 말씀을 하신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눅 23:34)
세상은 저를 버렸지만 주님은 지금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계신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사랑을 아버지께 아뢰고 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고 때리고 능욕한 자 들을 심판하지 마시고 오히려 무지한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죄악의 담을 헐어버리고 계신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구약의 율법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시키는 순간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 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계신다. 훗날 스테반 이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이 사랑의 용서를 닮아본다. 갑자기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가 주님을 향해 조소와 멸시 원망 섞인 소리로 비방한다.
“네가 만일 그리스도라면 너도 구하고 우리도 구하라.”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한 강도가 그를 꾸짖고 예수를 향하여 간구 한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 하소서” 이때 주님은 오른편 강도를 향하여 얼굴을 돌리시고 두 번째 말씀을 하신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그 강도는 즉시 구원을 받는다.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엄청난 행운을 얻는다. 두 강도는 같은 죄를 짖고 같은 상황 같은 환경에 처해 있었는데 한 강도는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이 두 번째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구원받은 강도는 교회를 다닌 적도 없고 더구나 사회봉사라든가, 선한 사업을 했다는 기록도 없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지탄을 받고 민란을 일으키고 강도질을 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아 십자가 형 에 처해 죽음직전 고통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마음속에 회개의 영을 넣어 주신 것이다 인간은 모두 약한 존재이다. 죄성이 있고 강팍한 마음이 있다. 아담도 가인도 다윗도 죄를 지었다. 바울도 베드로도 가룟 유다도 범죄했다. 그런데 왜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저주가운데 있는가?
그리고 또 이 두 번째 말씀은 우리의 죽음과 동시에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영혼은 즉시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명확한 내세론이다. 죽은 영혼이 구천을 헤맨다든지 심판 때까지 영혼도 무덤에 잠 잔다든지, 지옥 갈 영혼은 소멸된다든지, 연옥 이라는 중간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예수님은 다시 땅을 내려다보신다. 많은 무리들 가운데 거기 누가 계신가? 자기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가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소리 없이 흐느끼고 계시지 않는가?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 세 번째 말씀을 하신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그리고 제자 요한을 향하여 “보라 네 어머니이다.”
어머니를 멀리 떠나는 아들이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고통가운데서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지극한 효성을 보여준다. 믿지 않는 동생이 몇 있지만 주님은 믿음의 형제에게 어머니를 부탁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지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났다. 그 아픔 그 고통이 얼마나 크실까?
제 9시, 한 낮의 해가 빛을 잃고 어두운 죄악의 그림자가 온 땅을 삼키기 시작한다. 빛 되신 주님이 어두움의 세력에 덮침을 받고 악의 세력이 아우성 치고 있다. 주님은 이때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네 번째 말씀을 하신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사랑하는 제자와 따르던 많은 무리들, 그리고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린다 해도 그것은 참을 수 있지만 하나님마저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러나 ... 그러나 이 외침은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그 괴로움, 그 고통, 그 통분을 호소하는 소리가 결코 아니고 그 절박한 상황 중에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자기를 버린 하늘 아버지를 향한 철저한 믿음과 더할 수 없는 신뢰를 아뢰고 계신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죄, 또 온 세상만민이 지은 죄와 천추만대에 지을 죄를 한 몸에 감당하신 그 죄 덩어리 예수를 하나님의 공의가 용납할 수 없었다. 죄 없으신 그가 속죄의 제물 되어 대신 죽어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릴 수 있었던 것 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다.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그 순종이 우리의 가슴에 사무친다. 백세에 낳은 아들을 바치는 아브라함과 제물 삼기위해 칼을 든 아버지께 순종하는 이삭의 순종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지 너 댓 시간이 흘렀다. 주님은 잠시 십자가 밑의 무리들을 보신다. 옆에 달린 강 도들을 보신다. 또 하늘을 우러러보신 후 이제 당신을 돌아보신다. 머리와 옆구리 양손과 양발에서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주님, 그 목마름이 얼마나 크실까! 주님은 들릴 듯 말 듯 다섯 번째 말씀을 하신다.
“내가 목 마르다”
오대양 육대주의 물이란 물은 다 퍼서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쏟아 부어도 우리주님의 기갈은 면 할 수 없을 것이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이 주는 물은 마시고 또 마시고 우물이 마를 때 까지 마셔도 다시 목 마르거니와 주님이 주시는 물은 단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주님은 목마른 인생에게 생수를 주시기위해 오셨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기 위해 우리는 목 말라야 한다. 말씀과 구제와 봉사와 희생에 목 말라야 하고 겸손과 온유와 사랑에 갈급해 사모해야 할 것이다. 목마른 인생에게 흡족히 목을 축여 주시고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주님이시여, 이제 그분의 사명은 끝났다.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완수하신 예수님은 여섯 번째 말씀을 하신다.
“다 이루었다”
죄로 죽었던 억조 인생들의 생명을 살리시기 위한 대가를 충분히 치르셨다는 말씀이다. 메시야에 대한 구약의 모든 예언과 천번 만번 드리고 또 드려도 부족한 동물의 번제를 십자가 에서 단 한번 드림으로 완성 되었다는 말씀이다.
우리도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축복된 삶일까! 근본본체가 하나님과 같으신 주님께서 사람 되어 이 땅에 오셔서 할 일을 다 마치시고 이제 주님은 하늘을 우러러 자기를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를 향하여 마지막 부탁을 하신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눅 23:46)
십자가에 달리시어 첫 번 하늘을 향하여 부르시던 그 아버지를 지금 다시 부르시면서 하나님과의 대화를 끊이지 않고 계신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고난과 역경, 환란과 핍박이 와도 결코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겨서는 안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 되어 세상에 오셨다가 이제 다시 본향을 향하여 가시려는 우리 주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의 영원한 본향 - 그곳에 주님은 가셨다. 그곳에서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간구하고 계신다.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았던 휘장은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고 이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직접 담대히 나아갈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고 주님 다시오실 때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영체로 부활할 수 있다는 확실한 소망을 주셨다.
마지막 날 “다 이루었다”는 말과 함께 “나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 하는 복된 삶이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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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2014-03-29 손진옥[신고]
internet을 뒤적이다 오래 전 뉴스위크지에 실린 글이 눈에띄어
마침 사순절기간이라 함께 나누고싶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