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최종 선교지의 목표로하고 미국에서 출발하여 한국을 경유해서 도착할 호치민 시
(구싸이곤)나라이름은 월남 (VIETNAM) 이라는 곳으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사랑하는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께서는 그리운 조국 한국에 세월호의 참사로 어려움을 격고
계시는 형제여러분들께 찬양과 헌금을로 그리스도 사랑의 씨앗을 떨어뜨리고
이제 4 월 25일 제2의 선교목적지 월남을향해 우리들의 앞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출발합니다.
이른 아침 땅끝마을 호텔을 출발한 우리 선교단은 오는도중에 바지락이들어간 칼국수로
맛있는 점심을먹고 그 아련한 입맛이 체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꿈속에서나 볼듯한
아름다운 인천대교를 지나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안착 했습니다.
이와같은 아름다운 사진을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앞길을 선한길로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우리들을 거룩한 도구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거룩한 사역자로 사용하여주시옵소서
아멘
아시는대로 우리들은 비행장에 도착해서 어찌할바를모르고 각자 checking 할려고 하는데
도움주시는 분이 계셔서 창구하나를 열어주시고 그곳에서 단체로 할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황의석 장로님의 이름이 bording pass 에 잘못 기재되어 탑승 할수가없게
될뻔하였으나 그래도 은혜로 함께 동승할수있게 되었습니다
떠나기전에 탑승하고나서 항공기사무장에게 일들을 서툴게한다고 막야단을치니까
사무장이 이마가땅에 닿도록사과하는것을보며 ㅋㅋㅋㅋ 혼났조 못갈가봐
10분 뒤에 뜨는 아시아나항공 과 잠시 헤어져 우리 대다수의 일행들은 KE 683 편으로
19:00 시가 조금지나서 어둠이 짙어지는 인천국제공항의 시커먼활주로를 제트엔진의
굉음소리를 내며 하늘을 향하여 활주로를 박차고 올라가는가 했는데 바퀴들어가는 소리가
쿵하고 살며시 나더니 고도를 높여가며 서서히 기수를 서남방 방향으로 옮기기시작하는데
비행기창문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비행기 날개에서 번쩍이는 신호flash로 인하여
영종도의 불빛은 금새 사라지는듯 점멸하며 곳 시야에서 멀어졌고 내가보는 한쪽옆
날개의 붉은등만 졸린듯 껌벅거리며 한국시간 저녁 7:00 시에 출발한비행기가 2,223 Mil
을날으며 기내식도 맛보고 그곳시간 밤 10시10분에 호치민시 탄손누트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한국과 시간차이는 2시간입니다.
그런데 10분뒤에 떠날예정인 아시아나비행기가 40분이 지나도 들어오지를 않는거에요
알고보니 연착이라는거에요
먼저도착한 일행이 탄손누트 공항에서 후속팀을 기다리는모습
그래서 처음에는 영문도모르고 기다리다 보니 에어컨시설은 되어있어도 있는등없는둥
그래서 밖으로나오니 아유 밖은 후꾼 이럴바에야 우리라도먼저 호텔로 가자고해서
캄캄한밤에 뻐스에 짐과 몸을 실으니 우리를 New Pacific hotel 이란곳에 데려다
주드군요 자정이 되어서 방을 배정받아 방으로 들어가니 오늘일과가 끝
감사기도드리고 샤워하고나니 지쳤던 피로가좀풀리는듯듯했습니다
NewPacific Hotel 전경
다음은 여러분들께서 지루하시고 산만하시드라도 꼭한번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다 유익한 상식과 정보입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아주 잘아시는대로 우리대한민국 이라는 나라가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모르는 보리고개라는 한 단어가 우리의 가난에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춘궁기라는 말과함께 농촌에사는 우리 백성들에게 햇보리가 나기전까지 배곺음에
설음과 허기의 괴로움음을 우리는 모두가 겪어야했고 이런 가난을 끊기위해서 그때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이셨던 박정희 대통령께서 팔을 걷어붙이고 더 이상 이백성에게 가난을
물려줄수없다고 단언하시며 독일에 꽃다운 청춘의 간호사들과 지하 1000m까지 내려가서
석탄을 캐올리는 광부를(1963년 광부파독시작) 보내고 그들의 받는 급여를 담보로해서 독일의 뤼프케 대통령께 한국의 경제개발자금을 빌릴수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1964년 12 월 박정희 대통령께서 광부촌을 방문했을때 자체조직한 악단반주로
애국가를 제창할때 거기 함께했던 500명의 광부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끌어아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뒤로하고
그럴즈음 대한민국이 공산군의 침입을당해 어려울때 우리나라를 구해준 미국의 권유로
이곳 월남에 우리국군을 파병하는계기가 되었던것을 그리고 그후에 그 파급효과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했던 간호사들과 광부들의 외화벌이 그리고 월남에 파병하여 목슴과 바꾼 피값은 너무도 고귀하고 크고도 아름다웠다고 봅니다
그당시1964년 5월9일 미국존슨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에서 회담을했고
세부적인사항은 그당시 외무부장관이시던 이동원장관께서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파병할수
있게 하였던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비전투부대요원으로 태권도교관 10명 국군 제 1이동외과병원에 130명
계140명의 인원이 파병되어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정식 기록상으로보면 한국군이 월남에 파병했고 철수한시기의 기간은 아래와 같씁니다
1964 년 9월11 일에서 1973년 3월23 일까지 8년8개월이었습니다
그외에 좀 먼저갔고 나중왔고하는 일들야 있었겠지만
1. 비전투부대로 제1이동외과병원이 파병되고 이어서 비들기부대가 파병되며
파병 주월 한국군사령부가 채명신장군이 주축이되어 창설됬으며 이어서 맹호부대, 백마부대,청룡부대.십자성부대,
백구부대, 은마부대등 한국군 전투부대가 월남에 파병되었습니다.
한국군의 전과는 아래와같씁니다
우리국군의 연인원파병은 312,853 명이 참전했고
적 사살 :41,462명
포로:4,633명
귀순:2,483명
그리고 우리국군피해는
국군사망자 :5,077( 전사 4,597명,순직277명,기타사망,298명의 인명손실이있었읍니다
그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값진 경제부흥은이루말할수없이 크게발전하였습니다
그뿐아니라 이북과 대치하고있는 상항에서 국군현대화가 필수였던당시 월남에서 사용하던
군병장기가 한국으로 이송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일석이조인셈이지요
그후 포항종합제철이건설되고 서울부산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저는 1968 포항종합제철이
창립되면서 1975년까지 사장비서실과 홍보과에 근무하면서 공장건설과함께 지근거리
에서 박태준 회장님을 수행하였기에 그분의 사상이나철학 나라사랑 회사사랑 직원사랑은
남달랐고 국가의 큰프로젝트이기에 박정희 대통령님께서 자주헬기타고 때로는 승용차편으로 회사를방문하셔서 공사과정을묻곤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도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을 사장님께서 수행하시니까 함께할수있었습니다
저는 이지면을빌어 가난을 물리치고 현재 새계경제12위에 올려놓는 발판을 이룩하신
그같은 훌륭한 대통령께 경의를 표해 드리는바입니다
그리고 그당시 훌륭한 주월남사령관이셨던 채명신 장군은 내가 죽어도 장군묘역에 안장하지말고 사병묘역에 사병들과함께 안장해달라고해서 그렇게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썩어저가는세상에 참으로 훌륭한분과 함께살아온것에 자부를느낍니다
감사합니다.